나츠메 우인장(나츠메 타카시X하즈키 린)
By. 휴우린
“아, 츠지. 혹시 타카시 군 있어?”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선명한 노란빛깔의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는다. 그 뚜렷한 눈빛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는 것만 같아서, 왜인지 엷은 소름이 돋았다. 하즈키를 처음 만났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츠지?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린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있는데, 자고 있어. 깨워줄까?”
하즈키는 고민하는 듯하다 쓰게 웃으며 부탁할게, 라고 말하였다. 꽤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그거야, 그녀가 졸고 있는 나츠메를 깨워달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녀는 다음에 다시 온다며 돌아가곤 했었다. 아마 나츠메가 쉬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나츠메는 언제나 아쉬워했지만. 나는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창가 자리에 위치한 그의 책상 위로 가는 햇살의 줄기가 늘어진다. 그 따스함 속에서 허공을 부유하던 먼지가 그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 것이 일순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어쩐지 웃겨서 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장난스레 나츠메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일어나라고 다시 한 번 말하고 나서야 그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꽤나 나른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새벽에 뭘 하길래 이렇게 피곤해하는 거지? 나는 주저하다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 없이 어딘가 깊숙한 곳에 넣어두기로 했다. 물어본다면 그는 분명 곤란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대답할 게 뻔했으니까.
“나츠메. 깨워서 미안. 하즈키가 널 불러달라고 해서.”
“아니, 괜찮아. 고마워.”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던 그는 꽤나 기쁜 듯 웃어보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순간 그가 알게 모르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런 표정을 짓는 건 하즈키와 관련된 일이었을 때뿐이지만. ······아마도 두 사람은,
“사귀는 거 맞지?”
“뭐?”
“나츠메랑 하즈키 말이야! 진짜 부럽다니까. 너도 그렇지?”
아니. 단호한 대답에 니시무라는 장난스런 웃음을 흘렸다. 나는 교실 한구석에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저, 조금 신기할 뿐이었다. 나츠메도 하즈키도, 예전에는 어딘가 가라앉아서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에는 두 사람 모두 눈매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돌연히 하즈키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건, 녹음이 짙푸른 여름날이었다.
갑자기 미안해. 선생님께서 너한테 말하면 될 거라고 하셔서.
학급위원인 내가 하는 일이 맞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하즈키는 빙긋 웃어보였다. 5반에 전학생이 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반의 친구가 말해주기를, 전학생은 아이들이 말을 걸면 상냥하게 답해주지만,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없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를 힐긋 쳐다보았다. 햇살을 받자 옅은 갈색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그녀는 조금 지친 표정을 내보였다. 사실은 아이들이 다가오는 것이 귀찮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꽤나 예쁜 얼굴이었고 새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에 관심을 많이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멀거니 바라본 하즈키의 눈동자는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이 빛나는 동시에 어딘가 메마른 느낌이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금세 다시 미소 지어 보였다. 그것은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만들어진 표정이었다.
······나츠메 같네.
그가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전학생을 잘 챙겨주라던 선생님의 말씀 때문인지, 아니면 외톨이인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던 그의 무덤덤함 때문일지, 나는 자주 그를 바라보곤 했다. 서늘한 공기에 흔들리는 은빛의 머리카락과 녹색의 눈동자, 태양빛 아래 유난히 반짝이는 그 모습에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문득 나츠메와 시선이 맞닿으면,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지어주었다. 붙임성은 좋지만, 어쩐지 웃는 얼굴이 꾸며낸 것 같다. 아이들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공허하게 텅 비어있는 투명한 눈동자도, 주변의 공기가 밑바닥으로 물러앉는 것만 같은 기이한 고요함도, 전부 닮아서는 마치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그 삭막함과 고독함을 하즈키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미안! 그, 우리 반에 나츠메라고 있거든. 그 애가 너랑 닮은 것 같아서. 분위기라던가, 뭐 그런 것들!
그러고 보니 같은 2반이구나. 나츠메 군이라면 알고 있어.
그녀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아까 전과는 무언가가 확연히 달라서,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구나 싶었다. 어쩌다 친해졌는지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꽤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서 나츠메와의 첫 만남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열려 있는 복도의 창으로 싱그러움을 안고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느지막한 그 계절의 끝에 다정한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울린다. 어쩌면 그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친구 사이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란 걸 말이다.
“···츠지!”
“어? 나 불렀어?”
쓸데없이 길어진 과거회상을 급하게 마무리하고서, 나는 어느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하즈키와의 대화는 끝이 난 건지, 어느 틈에 가까이 왔을지 모를 나츠메는 꽤나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걱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종종 이런 얼굴을 할 때가 있었다. 불안일지 두려움일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그의 얼굴 위로 서린다. 그럴 때마다 그의 모습이 일렁이며 위태로워지곤 한다.
툭 치면, 금세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것만 같아.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혼자가 편했던 걸지. 혼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나츠메를 우연히 발견한 내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같은 반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쏟아내? 그때의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글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진심 같은 거?
“저기, 혹시 아픈 곳 없어?”
“갑자기? 으음, 오늘은 조금 기분이 안 좋은 것 말고는 딱히 없어.”
나의 대답에 나츠메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럼 됐어, 라고 말하였다. 무언가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보였기에, 주저하는 그를 붙잡으려는 순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결국 애매한 찝찝함만을 남기고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있는 나츠메에게 쪽지라도 보내볼까 고민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허물없이 대화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아직 그와의 관계에서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주변을 감싸고도는 분위기가 느리고 확실하게 침몰되어간다. 오늘따라 쓸모없는 잡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의 눈치를 보다 조용히 책상 위에 엎드렸다. 어느새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졸음이 쏟아졌다. 자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느덧 눈앞에 어둠이 깔린다. 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 드는 동시에 누군가가 귓가에서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어라? 나츠메, 하즈키. 너희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렇게 만신창이야?
······아직 집에 안 갔어?
응, 할 게 있어서.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그, 숲에서 발을 헛디뎌서. 타카시 군이 나를 잡아주려다가 같이 넘어졌어.
둘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이 시간에 숲을 다녀올 일이 뭐가 있는지, 단순히 넘어진 것만은 아닌 것 같은 멍자국은 무엇인지,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 있었다. 나츠메나 하즈키가 책임감이 강하고, 남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의지해줘도 좋을 텐데. 나와는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문득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종종 애기를 나누는 것이 다인 그런 애매한 사이. 아직도 그 두 사람이 그어놓은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만 같아 이상하게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나츠메와 하즈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미소 지었다.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있는 것은 이런 말뿐이구나 싶었다. 왜인지 모르게 숨이 막혀온다. 스멀스멀 몸을 기어오르는 듯한 불쾌한 무언가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 메스꺼움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들었다. 아주 작았던 감정이 부풀려진다. 그 틈새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원망과 증오 같은 부정적인 것들뿐이었다. 그저, 친해지고 싶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고 싶었다는 생각은 주제넘었던 걸까? 대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점점 제 몸을 넓혀가며 자리를 잡았다. 그것의 위세에 눌린 탓인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을 것만 같아서, 전부 포기하고 싶었다. 처음 느껴보는 기이한 무기력함이었다.
“···츠지!”
나는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활짝 열려있는 창문으로 늦은 오후의 공기가 들어왔다. 노을빛을 담은 바람은 커튼을 스치고 따스하게 불어온다. 조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설핏 정신이 들었다.
“지금 몇 시야? 나 이때까지 잔 거야?”
“오늘 수업 진도 많이 안 나갔어...!”
“···나츠메,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지 않아?”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 옆에 서있던 하즈키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안심했다는 듯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고 이만 집으로 가자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나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가방을 챙겨 둘을 뒤따랐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 텅 비어있는 교실은 어쩐지 삭막해서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까 꿨던 꿈을 곱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분명 전에 있던 일이었지만 그때 들었던 감정은 그렇게나 무겁고 그늘진 것이 아니었다. 부드러이 내려앉는 주홍빛 위로 나츠메와 하즈키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실은 그쪽이 진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나 선을 긋고 괜찮다고만 말하는 두 사람을 답답해하며 짜증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럼 진짜 최악이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중얼거림에 앞서 걸어가던 두 사람은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허둥거리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자 둘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웃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얼굴이 어쩐지 쓸쓸함과 죄책감을 가득 담고 있어서,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즈키는 눈을 접으며 다정하게 웃고서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괜찮아. 이제 사라졌으니까, 아까 같은 일은 없을 거야.”
주어도 존재하지 않는 모호한 말임에도 숨기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되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노을을 등지고 선 두 사람의 눈동자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반짝거려서 나와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실없고 허튼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너희들은? 괜찮은 것 맞아? 왜... 그렇게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어?”
“글쎄. 우리들은, 무서운 게 잔뜩 있어서 그래서······.”
사실은 언제나처럼 괜찮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영문 모를 대답을 중얼거리고서 나츠메와 눈을 마주친 하즈키는 결국 끝까지 말을 잇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나츠메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니시무라나 키타모토, 츠지 너 같이 다정한 사람들을, 소중한 존재들을 말이야. 지키지 못할까봐 무서워. 그건, 분명 린도 마찬가지겠지.
아마 둘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필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에 비치는 풍경이 다른 이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그래서 저렇게 아파하고 씁쓸해하고, 고민하는 것이겠지. 그럼에도, 이제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을 보고 있으면 종종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이를 만나서, 행복해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그저 장난스레 웃었다. 고마워. 어떤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나츠메와 하즈키가 나를 위해 필사적으로 굴었다는 것만큼은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그 작은 인사에 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얼굴이 서로를 본뜬 것만 같아서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너희 웃는 거 진짜 비슷하다! 일순 두 사람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라, 설마 다들 눈치 못 챈 거라고 생각한 건가?
“츠, 츠지! 언제부터 알았어?”
“혹시 다른 애들한테도 우리 사귀는 거 얘기했어?”
그 니시무라까지 알고 있으니까 이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대답을 꾹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안심한 듯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진실을 마음에 묻어두고서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한참이나 말없이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는 곳에서 헤어졌다.
“언젠가, 너한테도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말 한 마디에 복잡한 감정들이 서려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나에게 초조해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너도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다정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마음이 풀어진다. 그래, 기다릴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가다 문득 궁금해져 뒤를 돌아보니,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행복한 듯 밝게 웃으며, 둘은 어느새 손을 붙잡고서 걸어가고 있었다. 속삭이고 있는 것은 서로에게만 전하는 사랑임이 분명했다. 느지막한 계절의 햇살이 내려앉으며 옅은 여름의 향기가 났다. 그것은 나츠메와 하즈키를 닮은 듯 다정하고 따듯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