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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즈(다이무스 홀든X소피아 블랙웰)

By. 아마도

 

 

“아, 그거 재미있었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던 3명의 고용인 중 한 명이 지난 주말에 본 영화 얘기를 꺼내자, 다른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눈이 먼 여자와 부랑자 남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듣고 있었다.

             카페에서 서빙 일을 하는 친구에 의하면, 주변 테이블로 목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걱정하면서도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자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손님들이 꽤나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취급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난 그 사람들이 특별히 어리석거나 무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간혹 그럴 때가 있으니까. 게다가 대저택의 정원사로 일하다 보면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은 흔했다. 뭐, 나는 라디오를 틀어놓은 기분이라서 즐거웠지만. 매일 바뀌는 라디오 채널이라니, 이보다 사치스러울 수도 없을 것이다.

             이건 단순히 엿듣는 게 아니다. 애초에 엿듣는-혹은 엿보는-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가 들키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은 내가 바로 옆에 있는 걸 뻔히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 또한 그들이 나를 보고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건-다시 강조하지만-엿듣기가 아니다.

 

             ……아마도.

 

             부쩍 자라는 속도가 빨라진 주목나무의 가지를 자르며 자기 합리화를 마친 나는 대화가 어느새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는 걸 눈치 챘다. 손대지 않아도 주파수가 변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근데 오늘 부인께서 홀든 씨 배웅 안 했다며?”

“그래?”

“그렇다니까. 여기 있는 캐서린양이 직접 봤다잖아! 맞지?”

 

             말해봐, 캐시. 둘은 지금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가씨-이름이 캐서린인 모양이었다―를 채근했다. 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그게 고용주에 대한 거라면 더더욱. 나는 들리지 않은 척, 고개를 무심하게 돌린 주제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캐서린은 조근조근, 말을 시작했다. 응… 원래 항상 인사는 하시거든. 근데 오늘은 바로 서재로 가셨어. 하루 종일 거기에 계신 거 같아. 그녀의 말에 다른 둘은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았다. 몸이 안 좋으신가 보지. 아니, 서재로 직행할 정도면 아픈 건 아니잖아? 뭔지 몰라도 냉랭한 분위기였어. 캐시-캐서린-가 거들어보았지만 상상은 이내 길을 잃어 이리저리 흩어졌고, 마침 휴식 시간이 끝났는지 셋은 다시 저택으로 향했다. 수다 떨던 아가씨들은 이미 사라졌으나 그들이 남긴 주제는 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소피아 홀든. 홀든 저택의 안주인인 그녀는 고용인들의 인적 사항을 전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이걸 몰랐을 것이다. 원래 고용주와는 일정 거리를 둬야 서로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실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린다 존스 씨. 그녀가 부르는 내 이름이 익숙하면서도 생소했다. 그 때문에 잔뜩 긴장해버려서 뻣뻣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응대하고 말았다. 다행히 별 건 아니었고 정원 한 구석에 나무를 심을 수 있냐고 물어본 거뿐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심어보기 전까지는 확답을 드릴 수 없다-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물과 햇빛만 있다고 모든 식물이 쑥쑥 자라는 건 아니었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납득했는지 이후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올린 모양새며, 낭랑하게 울리는 목소리며, 자기 남편만큼이나 반듯한 눈빛이 그린 듯한 ‘홀든 부인’다웠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남편까지로 생각이 흘러갔다. 내-또 다른-고용주, 다이무스 홀든은 명령을 내리는 게 마치 제 옷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유력한 집안의 후계자로 살아왔으니 당연할지도. 절도 있는 자세에서, 특유의 진중함에서, 완벽한 윈저(Windsor) 매듭으로 매인 넥타이에서는 후광과도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말수가 적어서인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렸다. 다만 저렇게 무뚝뚝해서야 부인이랑 대화는 제대로 하나, 실없는 오지랖이 가끔 고개를 들곤 했다. 결혼반지도 안 끼고 다니는 거 같던데… 나는 작은 장신구 하나 없는 다이무스 홀든의 손과 홀든 부인의 약지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차례대로 떠올려봤다.

 

“…꼭, 댄스 파트너 같네.”

 

             내가 홀든 부부에 대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부잣집 자제들이 추는 왈츠처럼, 미리 정해놓은 듯 마냥 발이 엉키지 않고 스텝을 밟으면서 그 안에 감정 교류가 반드시 있으리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까지 딱 들어맞았다. 애초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집안들은 결혼을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그들이 아무리 부정 해봐도-있었다. 여러 저택에 고용되는 동안 나는 이런저런 이유와 조건이 맞았기 때문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부인이 중산층 출신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물론 삶에는 이런저런 형태가 있지만…….’

 

             아니, 뭔 잡생각이야. 나는 조금 못마땅해 하다가 이내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홀든 씨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라서 고용주로서 나쁘지 않았다. 쓸데없이 권위를 내세우는 일도 없었고. 홀든 저택에서의 일은 지금까지 거쳐 왔던 어떤 일터보다도 만족스러웠다. 수준 높은 정원사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나를 은근히 눈여겨보는 상사 아래에 있으면서 급료는-무지막지하게-훌륭했다. 그래, 내가 알게 뭐야. 사념의 흐름을 끊기라도 하듯이, 나는 튀어나온 가지 하나를 싹둑 잘랐다.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얼마 전부터 맡게 된 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내가 실력이 좋고 온실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한 구역을 온전히 책임지게 된 게 기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이건 일종의 승진 시험이지 않을까?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내 안에서 내렸다.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게 현재 원예계의 흐름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나처럼 온실식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도 중요하니까! 지금까지 항상 내 곁을 지켜주던, 믿음직스러운 파트너인 정원 가위를 강하게 쥐며 온실 문을 밀어 열었다.

             햇살이 공기를 데워놓은 덕분에 나는 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온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니 기분 좋았다. 본관에서 약간 떨어진 온실은 철로 섬세하게 골격을 세워놓고 창은 전부 유리로 만든 구조는 50년도 더 전에 유행하던 모양새였지만 저택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렸다. 걸어오는 게 귀찮아도 내 새로운 업무는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벽에 걸린 온도계를 확인하고 어제까지는 없던 화분으로 몸을 돌렸다. 다섯 해 정도 자란 오렌지 묘목이 내 가슴까지 올라와있었다. 오늘 오전, 갑자기 맞이하게 된 녀석이었다. 짙은 초록빛 이파리 사이로 하얀 꽃봉오리가 군데군데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느닷없이 오렌지 나무를 돌보게 된 상황이 이상했지만-설마 과수원을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성장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달라는 명령이 내려온 만큼, 각별히 신경 쓰기로 했다. 손가락으로 잎사귀를 톡, 건드리자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기를 담은 녹색이 귀엽게도 흔들렸다.

 

* * * * *

 

“이런, 젠장…!”

 

             순간적으로 입을 가릴 뻔했지만 어차피 들을 사람도 없는 거,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퇴근할 준비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려고 하던 차에, 가위를 온실에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일 출근하면 그 자리에 온전히 남아있을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손이 허전해서 자꾸만 쥐락펴락하게 됐다. 빌어먹을. 결국 뒤돌아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금방 갔다 오면 되니까. 나는 더 이상 퇴근을 늦추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평소라면 절대로 택하지 않을 길로 향하고 말았다.

             주인 내외가 산책을 즐긴다는 공간에 들어서자, 작은 숲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고요한 분위기가 내 주변을 감쌌다. 수석 정원사님이 직접 관리한다더니 진짠가 보네.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곧게 뻗은 플라타너스 나무의 기둥을 쓰다듬었다. 손바닥으로 회백색 껍질의 서늘한 감촉이 흘러 들어왔다.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탓에 손이 많이 가는데도 잘 가꿔진 모습에서 정원사의 수고를 읽어낼 수 있었다. 넓고 무성한 잎 사이로 석양이 운치롭게 새어 들어오는 광경을 보니,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정말 안 알려줄 거예요?”

 

             산책로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당황하여 몸을 숨겼다. 정말로? 나도 들어본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저택의 안주인은 평소의 빈틈없는 모습과 달리, 갈색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은 채 느릿한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가죽재질의 얇은 슬리퍼가 반쯤 잔디 위를 쓸듯이 움직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가벼운 차림새였다. 그 곁에 홀든 씨가 있었다. 흉터로도 가릴 수 없는 준수한 외모, 석양에 물들기 시작한 은발, 그리고 여전히 완벽하게 매인 넥타이.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상상하던 분위기와 달라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연극 무대의 뒤편을 훔쳐보는 듯한 감각이었다.

 

“소피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 위험하다.”

“어차피 내가 넘어지기 전에 당신이 잡아줄 거잖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헐렁한 가디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래서, 뭐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날 밖으로 끌어냈어요? 말해두지만, 난 아직도 당신한테 화나 있다고요. 잊은 건 아니겠죠? 거침없이 말을 쏟아낸 그녀가 산책로의 경계석 위로 가볍게 올라가자 홀든 씨가 아내에게 손을 뻗었다. 화나있다고 말하는 사람 치고는 퍽 즐거운 표정으로, 부인이 그 손에 자기 손을 올려놨다. 모든 상황이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가보면 안다.”

 

             뭐야, 설마 지금 농담한 거야? 신선한 충격-어쩌면 경악-에 나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렸지만 부인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삐뚜름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렇군요. 비밀스러운걸요? 그리고는 별 거 아닌 일 인양, 남편의 에스코트를 따랐다. 비록 홀든 씨는 자기 아내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둘이 어디로 향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그리고 가려고 했던-곳이니 당연하다. 머리로는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고용주의 사생활은 나와 무슨 상관이냐. 하지만 둘의 기류, 정확히 말하자면 건조하고 사무적인 관계를 상상하던 나를 비웃는 것만 같은 다정한 분위기가 궁금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재채기를 끝까지 하지 못해서 잔뜩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게 해결해버리고 싶은 쪽과 참아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조각났다가 하나로 뭉쳐버리고 다시 갈라섰다.

 

             결국 호기심이 이겨버렸다. 나는 온실로 향했다.

 

             적당히 떨어져있지만 온실이 제대로 보이는 곳에서, 나는 몸을 낮췄다. 이래서야 영락없이 ‘엿보는’ 거네. 내 머릿속에서 이죽대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들키면 가위 가지러 왔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 어차피 뻔뻔해지기로 했는데 끝까지 뻔뻔하게 나가야지. 혹시라도 두 사람이 나를 볼까 하는 긴장감과 비밀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기 직전의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멋진 곳이네요.”

 

             내부를 가볍게 훑어본 부인이 칭찬을 입에 올렸다. 물기를 머금어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녹색 풍경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내 일을 인정받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았다. 들킬까 봐 불안한 마음에도 입꼬리가 비죽비죽, 올라갔다. 어쩌면 월급이라도 올려주는 거 아니야? 완전히 근거 없는 망상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나는 최선을 다해 온실을 관리하고 있었고, 홀든 씨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것 같았으니. 이파리가 꽃처럼 퍼진 식물을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보던 그녀가 걸음을 옮기다 가장 큰 화분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하얀 꽃망울이 가지 끝에 맺혀있을, 오렌지 묘목 앞이었다. 잠시 할 말을 잃은 듯이 화분을 바라보던 그녀가 뒤를 돌아봤을 때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음을 참는 것처럼 입술을 꼭 깨물고 있으면서도 수줍음을 견디기 위해 입가에 힘을 주는 듯했다. 나는 그 표정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홀든 씨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더 크면 옮겨 심을 수도 있다.”

 

             네가 말했던 대로. 홀든 씨는 처음 듣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목소리는 똑같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낯설었다. 이 사람이 이런 목소리를 낼 수도 있구나. 부인은 그 말을 듣더니, 남편에게로 성큼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단 한 걸음으로 둘은 서로의 속눈썹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내가 오렌지 나무를 키우고 싶다고 한 거, 기억하네요.

 

“…고마워요.”

 

             눈을 내리깔며 그녀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 짧은 한마디에는 물 한 방울을 더 떨어뜨리면 넘쳐 흘러버릴 컵처럼, 애정이 넘실거렸다. 온실을 채우는 온화한 공기가 비단 햇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부인이 녹색 눈동자를 장난스럽게 빛내며 눈썹을 하나 들어올렸다.

 

“그래도 이런 선물로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날 제대로 체스 상대로 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다이무스 홀든 씨.”

“……사과하지.”

 

             헐겁게 묶여 흘러내리는 갈색 머리에 석양이 닿자 색이 한층 옅어졌다. 홀든 씨가 아주 자연스러운 손길로 그 부분을 아내의 귀 뒤로 넘겨줄 동안, 부인은 고개를 살짝 비틀어 그의 손에 얼굴을 가져갔다. 다음에도 일부러 져주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자신의 넥타이를 살며시 만지작거리는 부인이 늘어놓은 엄포에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명심하겠다.

 

“그리고 나중에 넥타이 매는 법, 알려주세요. 어쩜 이렇게 완벽하게 맸어요?”

“연습이 필요할거다.”

“괜찮아요. 아침마다 연습하면 되니까.”

 

             참나, 고작 체스를 ‘져줬다’고 그런 거였어? 캐서린이 말하던 ‘냉랭한’ 분위기와 오늘 오전에 들어온 묘목 뒤에 얽힌 비밀까지 파헤쳐버리자, 어쩐지 허탈해졌다. 그런 내 마음은 하나도 모르고 고용주 부부는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윈저 매듭이니, 딤플(dimple)이니 하는 단어가 간간히 들려오는 걸로 봐서 아직도 넥타이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부인은 한참 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더니, 매만지던 남편의 넥타이에서 손을 떼고 속삭였다.

 

“…키스해도 돼요?”

 

             그 말에 홀든 씨가 고개를 숙이며 뭐라-거리가 떨어져서 들리지 않았지만-작게 답하자 부인은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낭랑한 웃음소리가 유리 벽에서 이리저리 튕겨 돌아다녔다. 뭐 어때요. 다 웃은 그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내가 내 남편한테 키스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죠?”

“틀린 말은 아니군.”

 

             그렇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양팔로 남편의 목을 감싼 뒤, 발끝으로 섰다. 매달려오는 그 움직임에 맞춰 홀든 씨는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거기까지 보고 나는 최대한 조용히, 산책로 쪽으로 돌아섰다. 지나치게 내밀한 장면까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합이 맞긴 무슨. 나는 엉금엉금 둘에게서 멀어지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체스 하다가 토라지고, 그 때문에 늘 하던 배웅을 안 하는-꽤나 유치한-복수를 하는 아내와 그런 부인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그녀가 지나가며 말한 걸 기억해내는 남편인데. 사소한 일로 삐거덕거리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 * * * *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에게 정원 가위를 돌려주는 다이무스 홀든의 넥타이는 서투르기 짝이 없는 솜씨로 매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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