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영웅과 나의 오랜 친구에 관하여

파이널판타지14 애슐리X오르슈팡

By. 아로밀

창밖으로는 눈 내리는 하늘은 아니지만 무겁게 몸을 부풀린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엎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재해 이후, 초원의 잔디가 모두 얼어붙은 커르다스에는 드물지 않은 날씨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날 같으나 어딘가 모르게 특별한 하루 같이 느껴지는 것은 결코 날씨 탓은 아니었다.


“자네, 슬슬 돌아가서 우리의 은인과 화해해야 하지 않겠나?”


오르슈팡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내용물이 식은 쇠잔을 두드리던 중이었다. 생각에 잠기기라도 한 듯 오랜 시간 넋을 놓고 있는 벗의 모습이 딱해 보일 지경이 되어 말을 걸었더니 그는 원하지 않는 속내를 들킨 양 적지 않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리고는 뒤늦게 컵 안의 차가 식었음을 알아차린 그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더니 속절 없이 나무 식탁 위로 팔을 올리며 나와 마주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안 거야?”

“아무렴 우리가 알고 지낸지가 몇이라고 생각하나.”


아트보르그 요새와 용머리 전진기지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만큼이나 사사로운 교류는 드물다. 물론 우리가 공적인 일 외의 만남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친구로서 그에게 사정이 생겼다는 것정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목적 없이 나를 찾아온 것이나 평소와는 달리 차분하며 어딘가 의기소침한 기색이라던가.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근거는 이쪽이 확언할 만한 정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실은 어제 영웅이 아트보르그 요새에 들렸거든. 자네와 다퉜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용머리 전진기지가 아닌 이곳에 들려 안절부절해하는 기색이니 눈치를 챘지. 그리고… 오르슈팡의 기분을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더군.”

“뭐라고… 대답했어?”


오르슈팡을 알고 지낸 기간은 길었다. 어린 시절, 포르탕 가문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여 파티 홀과 떨어진 곳에서 혼자 검 연습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더라지.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오르슈팡은 어두운 구석이 있었던 것도 같다. 다행히 마음 문을 열어줘서 지금까지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후로 오르슈팡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지면서 지금과 같은 밝은 성격이 되었지. 달리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감정과 표정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그의 얼굴이 놀라움과 설렘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들어낸 것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반가운 표정이었다.


“그건 돌아가면 알 수 있겠지?”


장성한 친구의 옛 모습을 보니 나이에 맞지 않게 불쑥 장난기가 고개를 들었다. 놀리고 있는 것을 아는지 조용히 한숨 짓는 모양새는 어릴 적 성숙했던 그와는 달리 천방지축이기만 하던 내 모습을 보고 그가 자주 취하던 동작이었다. 웃음을 터뜨리자 곁에서 눈총이 날아와 한 발 늦게 소리를 죽였지만 표정까지 온전히 거두지는 못할 노릇이었다.


“그래, 계속 이렇게 독수공방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 얘기해줘서 고맙다. 그럼 프란셀, 다음에….”

"아, 오르슈팡! 잠시만 기다리게.“


나갈 채비를 하던 오르슈팡이 행동을 멈추고는 나를 쳐다봤다. 눈앞의 친구는 분명 내가 기억하던 옛 모습을 갖고 있지만 그 시절과는 확연하게 다름을 안다. 우리는 성장하여 각자 다른 자신의 자리 위에 서있다. 또한 이제 오르슈팡의 곁에는 그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존재하지. 그녀는 에오르제아의 영웅, 빛의 전사, 푸른 용기사, 구국의 영웅 등 다양하게 불리지만 오르슈팡에게 있어서는 오직 일평생 아끼고 사랑할 사람이다.

오르슈팡의 연인은 내게 있어서도 단순한 친구의 연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구국의 영웅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단이라는 누명에 씌여 마녀의 비탈길에 투신할 위기에 처했을 적에 오르슈팡을 도와 나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자신의 목숨보다 값진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내게도 소중한 은인이었다.

이렇듯 내게 있어 큰 의미를 가지는 두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여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된 것은 내게도 기쁜 일이었다. 그러니 그런 두 사람을 위하는 내 마음이 진심인 만큼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두 사람 다 서로를 아끼다 그런 건 알겠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분명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걸세.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다툼이었으니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단지 이렇게 몇 마디 이야기를 띄우는 것이 아닌 보다 넓고 깊은 바다로 항해해 나아가야 하는 일이라 해도 나는 기꺼이 팔을 걷어붙일 거야.


“프란셀, 그건 정말… 고마운 말인걸.”

“우리 사이에 뭘. 한마디 거드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겠어? 두 사람 다 내가 많이 아끼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주면 돼.”

“그럼 나와 애슐리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건가? 좋아, 다음에는 셋이서 만날까? 시간이 나면 함께 저녁이라도 들지.”

“그건 자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빠른 시일 내에 애슐리와 화해한다면 말이야.”

“물론이지! 당장 오늘로 시간을 잡아도 돼! 우리 기지에 올 준비나 해두라고!”

“하하하. 자신 있어 보이니 다행일세.”


청자 없는 결의지만 가족처럼 소중한 두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바라건대 너희들이 이 성도의, 그 어느 세상의 연인보다도 행복하길. 섭리의 땅에서 바라보는 맑은 밤하늘에 걸린 환한 달과 아름다운 성도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자네들이라면 할로네 여신께서도 마땅히 그 앞길을 축복해주실 테니까.

00:00 / 02:5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