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상한 나라의 흰토끼(매드해터X모크)

By. 잔영

 모크는 말하자면, 시체 같은 사람이었다. 악담 같은 게 아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모크를 삶에 붙잡아두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는 얘기다. 살아남기 위해 악을 쓰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원더랜드에서는 좀 이질적인 느낌이지만...... 그런 점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선을 유지하되 그 너머의 것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까. 예컨대, 오른쪽 어깨에 도끼에 찍힌 흔적을 티 내지 않으려고 가죽점퍼를 입고 간 날이었다. 약을 담은 봉투를 확인차 뒤적거리다가 보면, 이렇게, 의뢰한 것과 다른 가루가 담긴 작은 통을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눈이 마주치면 모크는 특유의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꾸한다.

 “상처가 있는 상태에서 약을 피우면 곪아.”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약이었으므로 내가 단순한 중매인이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모크는 한결같이 무심하고 다정하게 행동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반감을 품는 게 이상한 쪽이 된다. 동시에 그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뜻이라서 나는 모크가 언제든지 사라질 준비를 하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공간은 공간의 주인을 닮는다고, 모크의 집은 그가 떠나고 나면 존재했다는 사실을 미처 증명하지 못할 만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붙잡을 수 없고 그 어떤 흔적도 남겨두지 않는 사람. 어느 때는 그게 마치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종종 까마귀가 조용할 때면 불안감이 밀려온 적도 있었다.

 

 사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하트나 장의사, 까마귀 같은 거물들이라면 모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인 살해 혹은 강제 동반 자살 소식이 판을 치는 이곳에서 사랑을 운운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사업주의 구애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밤을 새웠다. 족히 2m가 되는 성인 남성을 끌고 슬럼가까지 가는 길에 욕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루아.”

 그래서 매드해터가 모크의 본명을 부르는 걸 들었을 때. 그러니까 매드해터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와, 씨발...... 미친놈이 어울리지도 않는 사랑을 하는 게 위협이 될 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미친놈은 누굴 좋아할 때도 미친놈처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쓰잘데기 없는 감정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했으므로 건물 뒤로 몸을 숨긴 건 반사 작용이었다. 어째서인지 악문 잇새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에 습기가 맺혔다. 모크의 이름을 매드해터가 부르는 말로 처음 배웠으나 앞으로도 내가 모크의 이름을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있어서는 안 된다는 쪽에 가깝다는 점이 조금 분했지만 견딜 만했다. 재차 말하지만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렇게 혼탁하고 돌아버린 눈깔을 하는 게 사랑이라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이다.

 

 그날 이후, 사업주의 부탁으로 모크의 집을 가는 동안 발걸음이 떨어지는 감각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목숨값으로 감정은 깔끔하게 지웠으나 문득문득 그때의 장면이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았던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창문 밖으로 날아다니는 산타와 루돌프를 보면 일주일 밤새 그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나 감정이 들어차 있었던 모크의 목소리가 너무 낯설었던지라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게 되는 건 통제 범위를 넘어선 부분이었다. 모크가 약을 담을 동안 나는 초조하게 그 모습을 흘끔거렸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크는 크게 다를 것 없이 행동했다. 여전히 무심하고 여전히 다정했다. 테이블에 올려진 캐모마일 티가 식어가는 줄도 몰랐는데 입구가 가지런히 접힌 종이봉투를 건네는 모크가 시선을 아래로 움직여 찻잔을 보길래 그제야 생각보다 긴장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변한 게 없어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온 모크한테는 시체에서 절대로 날 수 없는 냄새가 났다. 희미한 유칼립투스 향. 그건 꼭 모크를 살게 만드는 미련 같았다.

 사업주에게 돌아가는 길에 모자 사이로 청회색 머리가 빠져나온 줄도 모르고 급하게 움직이는 매드해터와 스치듯 마주치고 생각했다. 원더랜드니까 사랑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거라고. 사랑을 맹신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소름 돋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한동안 애를 써야 했다.

00:00 / 02:5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