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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 고양이

하이큐(쿠로오 테츠오X선주경)

By. 올비

 

 

요즘의 쿠로는 확실히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쿠로는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한다. 상대에게 ‘재미있는’ 반응을 끌어내는 걸 좋아하고, 반응이 나오면 목표를 달성했다는 듯이 자주 저런 미소를 짓는다. 이른바 얄미운 표정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이 모든 상황이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 어릴 때부터 쿠로를 봐온 나는 쿠로의 그런 미소가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최근 들어 쿠로의 표정이 어색하게 보이는 이유는 아마 생소함 때문일 거다. 원래도 그런 얼굴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실실거리는 웃음이 늘었다. 쿠로의 미소에 재미 이상의 것이 실려있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나는 안다. 알아버렸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명확하게 감정이 실려있는 그런 웃음을 짓는 쿠로는 의외로 보기 드물어서.

 

 

 

 

처음에는 신선했고, 두 번째엔 미쳤나 싶었고, 세 번째로 봤을 땐 확신이었다. 쿠로의 시선 끝에 주경 상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 온몸의 털이 삐죽 서는 느낌을 받았다. 소꿉친구의 연애 사정 따위 알고 싶지 않았어, 그런 마음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다.

나는 정말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일부로 모른 척하고 있기는 해도 쿠로가 주경 상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왜 저러나 싶은 순간이 많다. 그 얄궂은 미소로 “타마 쨩.”하고 접근한 후에 “좀 도와줄래?”, 그렇게 꼬드기는 걸 보면 속내가 훤히 보이는데, 그건 좋아하는 애에게 수작을 걸어보려는 사심이라기보다는 ‘말을 걸고 싶은데 할 말이 없으니까 일단 대충 말을 걸어본’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애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이 ‘왜’ 드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까. 쉽게 말하면 감정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사실 어쨌거나 내 알 바는 아니기에 그런가, 하고 넘겼다가 쿠로의 그 행동들이 보기에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될 정도에 결국은 물어버렸다. 이런 일로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무어라 운을 떼야 할지 몰라 한참을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다가, 쿠로, 하고 조용히 불렀다. 쿠로는 입에 아이스를 물고 무슨 일이냐는 듯이 눈썹을 까닥였다.

“요즘 주 상에게…. 많이, 뭐랄까.”

치대지 않아? 그렇게 물으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쿠로는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무슨 말인지 안다는 양 예의 그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반응이 재미있잖아?”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 나는 처음으로 쿠로가 한심해 보였다.

“그런데 켄마,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의외로 타마 쨩을 많이 신경 써주고 있네.”

게다가 내 교우 관계의 발전에 대해 감격하는 표정을 짓는 바람에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자는 내 마음만 확실하게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내가 물을 정도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안 드는 건지. 남의 연애사에는 당사자보다 잘 알아채면서 자기 연애사에는 헛다리만 짓는 걸 보면 의외로 쿠로는 바보다. 아니다, 의외가 아니다. 쿠로는 원래 배구 바보였으니까.

그 후로 쿠로에게 주경 상의 일로 뭔가를 물은 적은 없다. 전국에서 패배한 후에, 주경 상에게 고백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로 거절당한 쿠로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물어본 일을 빼고는. 사실 그때도 쿠로의 대답을 들으면서 ‘정말 더는 관여 안 해야지.’ 하는 마음만 굳혀졌을 뿐 소득이라고 할 게 생기진 않았다.

 

 

 

 

 

큰 사건이라고 한다면 쿠로가 주경 상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일밖에 없을 정도로 아무 일이 없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쿠로의 졸업식 이후 나와 주경 상의 만남은 줄어들었지만, 네코마가 전국 우승을 하는 걸 보러 왔다고 주경 상과 당연하게 같이 온 것을 보면 여전한 것으로 보였다. 관계의 발전은 없고, 쿠로는 예전부터 꾸준히 해왔던 그 행동을 아직도 하고 있고, 주경 상은 그런 행동들에 따로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말과 행동들. 오고 가는 작은 터치.

쿠로는 네코마와 다른 학교 간의 시합을 보면서도 주경 상에게 말을 걸었다. 멀리 있어서 들리지는 않았는데, 대충 입 모양을 읽어보니 아마 내 이야기인 모양이다.

“켄마가 주장이라니. 이 쿠로오 상은 감격스러워….”

다소 어이없는 표정의 주경 상은 무슨 코즈메 군의 부모님처럼 말하는 거야, 하고 말하려다가 관둔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지금의 쿠로에게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그렇지, 쿠로의 옆에 이년쯤 있으면 쿠로는 은근히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주경 상의 반응은 상관없이 계속 나와 관련된 말을 하는 쿠로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또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그런 걸 놓친 쿠로가 아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쿠로는 다른 사람이 쳐다볼 정도의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외쳤다. 손자가 TV에 나와서 신난 할아버지 같은 말을 했는데, 듣고 싶지 않아서 죄 흘려들으며 최대한 모른 척했다.

“오, 쿠로오 상이다. 쿠로오 상!”

나는 끈질기게 아닌 척, 모르는 사람인 척을 했는데 애꿎은 리에프가 손을 방방 흔들며 반가워했다. 옆에서 토라가 왜 아는 척 안 해? 하고 물어서 솔직하게 쪽팔린다고 대답하니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쿠로는 못 들었나? 하고 계속 관중석에서 기웃거리고, 야쿠 군은 또 언제 온 건지 쿠로의 옆에서 “켄마가 너 쪽팔리나 본데.”하고 내 심정을 대신 설명해주었다.

“그런 거였냐! 켄마 너!”

“테츠로…. 보통은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면 쪽팔려 해.”

여전히 테츠로라고 부르는구나. 시선을 돌려 주경 상을 바라보자 잠깐 움찔하더니 손바닥을 흔든다. 나도 고개를 꾸벅해서 인사했다. 쿠로와 내가 친한 걸 알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에게 털어놓아야 다른 사람에게 퍼지지 않을 테니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였는지, 하루는 주경 상이 나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왜 자꾸 자신과 테츠로의 관계를 오해하냐고. 그 말을 하는 주경 상은 쿠로를 여전히 ‘테츠로’라고 불렀다.

그래서 대답했다. 테츠로, 라고 부르는 게 문제라고. 쿠로가 무슨 말을 해서 주 상이 그렇게 부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 남녀 관계에는 요비스테를 잘 안 해서 그래. 보통은 사귀는 사이로 알걸. 특히 쿠로는…테츠로라고 잘 안 불리니까. 그 말을 듣고 다음 날부터 쿠로오라고 고친 걸 쿠로가 괜찮다고 박박 우겨 다시 불리게 된 이름이다. 사실 그래, 구시대적이라고 하면 구시대적인 발상이기도 하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긴 하지만 그게 쿠로라면 명백하게 ‘그런’ 의미인데, 그걸 대학에 가고 나서도 부르고 있네. 여전히 사귀는 사이로 오해받고 있을까.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쿠로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경 상과 쿠로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을지는 궁금하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왜냐하면, 내가 졸업한 후에는 어쨌거나 나도 다시 쿠로와 잦은 만남을 가지게 될 텐데, 그때마다 주경 상의 눈치를 보게 되는 건 싫으니까. 정확히는, 쿠로가 주경 상에게 그런 행동을 하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실실 웃는 표정을 보게 되는 게 싫었다.

쿠로는 자기가 다 아는 줄 안다. 알긴 알지만, 정작 주경 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헛다리를 짚고 있으면서.

타마 쨩이 너무 착해서 걱정이라느니, 상냥하다느니.

주경 상은 거절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걸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저 모양인 거지.

주경 상의 어깨에 은근슬쩍 손을 올려두는 쿠로와, 신경 쓰이는 기색이 있어도 결국 그 손을 쳐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주경 상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런 데도 모른다니 정말 쿠로는 멍청해. 감독의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난 7초, 뒤늦게 앞을 바라보면 마침 기깔나게 서브에 실패해서 바닥으로 나뒹구는 배구공이 보였다. 쿠로가 리에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성을 내는 그 순간까지 쿠로의 손은 주경 상의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쿠로오 상!”

“왜 나한테 사과하냐! 사과는 켄마한테 해!”

“아니…. 필요 없으니까. 다음에 성공시키면 되잖아….”

“테츠로….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주경 상이 쿠로를 말릴 동안 다시 호루라기가 울렸다. 상대의 서브 차례다. 슬슬 점수판도 20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젠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브 실패로 미묘하게 축 처져 있는 리에프에게 다음에 잘해, 그렇게 말하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1세트인데 컨디션이 처지면 안 되지.

문득, 리에프에게 조심스레, “쿠로, 아직 주 상이랑 안 사귄대.”라는 말을 하면 리에프는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졌다. 만약 이 시합이 3세트까지 간다면, 모두가 지쳐 있을 때 말해볼까.

상대 팀이 7초의 시간을 전부 쓸 동안 멋대로 쿠로의 연애 사업을 가지고 팀의 사기를 올릴 생각을 하며, 쿠로에게 마음속으로 예의상의 사과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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