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프노시스 마이크(유메노 겐타로X로로쿠 유니)
By. 엔유리
요즘과 같은 21세기에 종이책을 읽는 독자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또, 초고를 직접 원고지에 작성해 보내는 작가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아, 미리 밝혀두자면 이 글을 엮고 있는 본인도 아직 종이책 파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지금 난생처음으로 원고를 받으러 작가의 집에 직접 찾아가게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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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객 관찰자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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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기엔 내가 떠안은 일감은 몹시도 갑작스러웠다. 본래 업무를 보던 직원의 사고로 생겨버린 공백.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사원 중에서 고작 원고 하나 받자고 시부야까지 왕복하길 자원하는 사람 같은 게 있을 리도 없으니 상대적으로 연차가 낮은 내가 임시직을 맡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폭 내쉬고서 책상 위에 놓인 인수인계서를 집어 들었다. 당연히 인수자는 나. 인계자는…….
“…로로쿠 유니.”
신입치고는 업무 능력이 상당히 좋은 편인 데다, 그 ‘유메노 겐타로’의 원고를 ‘무사히’ 받아 왔다는 것으로 약간의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었다. 원고 하나 받아 오는 게 무어가 그리 힘든 일이냐 물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나조차도 아직 그를 경험하지 못한 터라 일의 강도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하나 이 업계에서 그의 원고를 받아 오느라 고역을 치렀던 사원의 수를 생각하면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 다시금 입술을 두드리는 한숨을 속으로 삼켜내고서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인계사유라는 네 글자가 눈동자에 똑바로 들어와 박힌다.
“지병으로 입원했다고…….”
몸이 약하다는 사실은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갑자기 쓰러질 줄은 몰랐지만. 무어라고 한들 가장 답답할 건 본인일 테니 이 이상 말을 얹지는 않기로 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번 짚어내고서, 서류들을 모아 정리하기만 할 뿐. 나갈 채비를 마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일찍 끝내버리고 쉬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로로쿠와 그리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으나, 퇴근하면 업무 보고 겸 병문안 정도는 가야겠다 생각하며 시부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점심시간도, 퇴근 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각의 지하철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시부야까지 가는 길이 그리 멀진 않았으니 붐비던 그렇지 않던 그다지 상관은 없었을 테지만, 당장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불쾌감을 피할 수 있음에 안심하기로 했다. 이번 원고의 주제가 뭐라고 했더라. 그따위 생각이나 심으며 가지를 키우고 있으면 들려오는 도착 안내 음성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역에서 유메노 작가의 거처까지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잘 닦여있는 길을 따라 코너를 몇 번, 처음 와 보는 낯선 길임에도 헤매는 일 없이 찾아온 걸 보면 의심의 여지도 없다. 이마 위로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손등으로 한 번 훔치고서 초인종을 누른다. 오늘은 마감일이니 원고를 가지러 왔다는 사전 설명 같은 건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터다. 눈에 들어오는 저 현관문이 열리기까지, 걸어오느라 차오른 숨을 천천히 골랐다.
“오셨나요? 유니……가 아니군요. 이런.”
몇 초간의 딜레이 끝에 문이 열리고, 기타 매체로만 접해왔던 작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로로쿠의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듯 퍽 친숙한 어조로 이름을 뱉어낸 그의 눈이 치켜 올라간다. 유메노 겐타로에게서 원고를 멀쩡히 받아오긴 힘들 거라는 선배들의 근거 없는 소문에 지레 겁이라도 먹은 듯 목 뒤로 침이 꿀꺽 넘어간다. 일단 보이는 것만 봐선 그다지 까다로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은, 자초지종부터 전달해 드리고 받을 걸 받아 가자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다물려 있던 입을 열었다. ……열려고 했다.
“왜 유니가 오지 않고?”
제 입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귓가를 파고드는 소리는 단순히 이유를 묻는다기엔 너무도 불안정했다.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머리 위로 쏟아지는 온갖 의외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묘하게 찌푸려지는 미간을 눈에 담으며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게, 로로쿠 씨는 사정이 좀 있어서요.”
“사정이요?”
“…입원했거든요.”
남의 사정을 이렇게 함부로 알려도 괜찮은 건가 싶었으나, 집요하게 물어오는 것을 피할 길은 없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당혹감 어린 시선으로 힐끗 쳐다본 그의 낯빛은 무언가 중한 것이라도 고민하는 양 심오했다. 덕분에 원고를 받을 타이밍을 놓친 것은 덤. 뭐지? 이게 그렇게 심각한 사항이던가?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갈 때 즈음, 그는 다시 입을 열어 내게 물었다.
“하아, 상태는 어떤……아니, 위치는 어디인가요?”
그리고서 아차 싶었던 듯 들고 있던 원고지를 내민다. 가히 알고 있다면 속히 대답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보통 작가가 일개 편집자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던가 하는 의문을 표출해내기도 전에 창황한 목소리는 그에게 답을 내놓았다. 로로쿠의 상세한 상태까지 알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나 위독한지에 대한 것까진 알 길이 없다.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병원의 소재뿐. 그는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서 급한 발걸음을 뗐다. 장황한 서술에 독자들이 느끼는 체감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모든 과정이 단 몇 분 만에 일어난 것이다.
유메노 겐타로가 떠나간 그의 집 앞.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 몇 분 여간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그저 서 있기만 하던 발이 드디어 한 걸음 떨어졌다. 원고도 받았고, 로로쿠의 행적도 전했으니 분명 목적한 바는 전부 이뤘을 텐데도 이 기이한 기분은 왜일까 자신의 몸을 감고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로 회사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좌석 한쪽에 앉아 가는 그 무료한 시간 동안에 나는 이 원고지의 주인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두어 번을 더 되새김질해보아도 그가 보인 행동은 단순 담당자에게 보일만 한 그것은 아니다. 굳이 추측을 해보자면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으레 지닌 호감 이상이라던가. 거기까지 흘러간 의식은 이내 곧 하나의 문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왜 로로쿠의 입원 소식을 알지 못했지?’
로로쿠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줄 정도의 의리였다면 안부를 듣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으리라. 연락 수단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렇지만 또 아니라고 하기엔 그의 반응이 영 뇌리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찰나의 착각이었을지 모를 그의 무너지는 표정이 여태까지도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기분이다.
ㅡ다음은 신주쿠, 신주쿠 역입니다. 출구는…….
깊게 틀어박힌 상념은 다시금 울리는 안내 음성에 의해 갈무리 되었다. 받은 원고를 부서에 넘기기만 하면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 잡념을 떨치기 위해 몇 번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서 나는 바깥바람을 맞았다.
근무지로 돌아가는 길목은 평일임을 고려해도 그리 부산스럽지 않다.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정말 어중간한 거리. 분명 군중이 있음에도 고요한 듯, 이 정의할 수 없는 어정쩡함이 퍽 조금 전 떠올렸던 두 사람 사이의 기류와도 같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찰나였다. 걷는 속도를 높여 일터로 향하는 와중에서, 나는 결국 이후 일정 하나를 지우기로 했다.
“…병문안까진, 가지 않아도 괜찮겠지.”
구태여 이유를 특정하진 않았다. 단순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