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연인
유리!!! 온 아이스 (카츠키 유리X사쿠라노 하나비)
w. 원하
둘을 보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가 언젠가 노래를 듣고 생각했던 이야기 속의 연인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마지막이 기억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끝이 분명 행복할거라는 믿음이 굳게 들었다. 어떻게 흐르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둘이었다. 그야, 하나비도 유리도 서로를 만나서 봄을 맞이했다. 길고 긴 겨울을 끝내고 이제야 눈이 녹아내리고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하나비를 처음 본 것은 유리의 소개가 아니었다. 분명 처음은 디트로이트에서였다. 그 날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고 날이 추웠다. 그럼에도 유리는 연습을 나갔다. 유리가 처음 디트로이트에 온 날도 비가 왔다. 카츠키 유리라는 사람은 고집이 세지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적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피겨를 사랑했다. 카츠키 유리의 피겨스케이팅은 그야말로 사랑이었다. 나는 그래서 유리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 디트로이트는 어느 거리와도 같이 혼잡했고 사고가 유독 많이 일어났다.
그리고 링크메이트가 사고가 나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늦게 소식을 듣고 간 곳에는 불안함에 떨던 유리가 있었다. 그 옆을 친하게 지내던 음대생 친구가 불안해하는 유리를 안심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유리에게 괜찮을거라고, 안심시키려는 말을 하며 다가가려는 순간, 유리는 자신을 안심시키는 차원에서 안아주려던 그 애를 밀었다. 걸음이 순간 멈췄다. 발이 더 나아가지를 못했다. 유리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고, 밀쳐진 아이는 괜찮다고 말했다. 유리가 오고 난 후에 환영한다는 뜻에서 케이크에 초를 몇 개 꽂아 내민 기억이 났다. 그때, 유리는 초를 불고 소원을 빌라는 내 말에 짧게 눈을 감고 무언가를 깊게 바랐다.
“유리, 무슨 소원 빌었어?” “음..강해지게 해달라고.”
“유리는 강해지고 싶구나! 하지만 유리는 지금도 강한걸?” “고마워, 피치트. 하지만.. 난, 약한걸.”
그때 유리는 울 것 같은 아이같았다. 그래서 유리에게 갈 수 없었다. 발걸음을 조심히 뒤로 옮겨 돌아가다가 분홍색 머리를 길게 올려묶은 아이를 만났다. 그 애가 하나비였다. 유리가 하나비를 소개해줄때 아, 하고 알아차렸지만 그때는 좀 더 차가운 느낌이었다. 그녀도 유리처럼 몸이 잔뜩 굳어서 동상에 걸린 사람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둘은 겨울에서 얼어붙은 몸을 억지로 깨트리며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탁할게요. 그때의…, 일은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하나비의 얼굴은 그 때의 유리의 울 것 같은 얼굴과 비슷했다. 유리에게는 행복한 저만 보여주고 싶어요. 바르셀로나의 밤은 아름다웠고 하나비의 말은 슬펐다. 그거 알아? 둘은 정말 비슷해,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도 하나비는 슬프게 웃었고 고개를 저었다. 유리는 반짝이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유리가 있어서 빛나는 사람이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라고 묻고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 하나비가 울 것 같아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었고 그 뒤에도 하나비와 유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찍어주거나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하나비는 유리의 겨울을 알았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유리가 겨울에 갇혀있으면 하나비는 얼음에 찔려 손에 피가 나더라도 유리의 시간을 돌려놓을 것이다. 눈을 치워서라도 녹이고 새싹들을 심어서라도 봄을 만들어낼게 분명했다. 하지만 유리는 영원히 하나비의 겨울을 모를 것이다. 어쩌면 하나비는 지금도 겨울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겨울의 유리를 한 번 외면했다. 결국 유리를 꺼내준 것은 링크메이트인 내가 아니라 빅토르와 유리오, 그리고 하나비였다.
“저, 유리를 만나고 한 번도 겨울이 춥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튜브에 바람이 빠지지 않도록 구멍을 막다가 하나비의 말에 손을 떼버렸다. 친한 선수들끼리 온 바캉스였다. 하나비는 짐을 옮기다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하며 나에게 웃어보였다. 여름의 하나비는 이제 봄이었다. 위에서 반짝이던 여름의 햇살이 하나비의 웃음이 따뜻하다는 것을 더욱 강조했다.
아, 하나비의 봄은 카츠키 유리였구나. 하나비는 카츠키 유리를 만난 순간 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카츠키 유리의 겨울을 껴안느라 몸이 얼어붙었던 것이고 그걸 녹인건 결국 카츠키 유리였다. 웃음이 나왔다. 튜브에 바람을 넣는 기구를 가져오던 유리가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왔다. 아니, 아무것도 없어. 유리.
유리가 언젠가 말했던 이야기의 연인들은 서로에게 얽힌 저주가 있었지만 상대방의 존재 자체로 저주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둘은 사실 또 상대의 저주를 풀어주다가 저주가 옮았지만 그걸 알 수도 없을만큼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저주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저주의 흔적으로 둘은 몇 번의 생에서 다시 서로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유리, 어쩌면이 아니라 정말로. 유리랑 하나비는 운명이라고 생각해. 둘은, 운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