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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프로(코노하X텐노 사사야키)

By. 사사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이 공간에 있은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이쪽 세상에서 시간은 존재의 가치를 잃고 멈춰서, 유일하게 시간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시켜주는 것은 바깥 세상을 생생하게 재생하고 있는 작은 텔레비전이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은 죽고 없었고, 내 딸아이는 이곳에 함께 해 관심이 가는 화면이라곤 손녀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단 한 개의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은 바깥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과 같이 이 커다랗고 공허한 공간의 한자리를 메꾸었다. 그래 봤자 이 넓디 넓어 끝을 알 수 없는 곳에서는 별로 큰 자리는 아니었다. 내가 평소에도 텔레비전에 유독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이다만, 오늘은 그것과는 별개로 이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평소와 같이 손녀인 마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느끼는지 궁금한 건 내 딸아이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가끔 이 무질서한 공간에서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본다. 그럴 때마다 시온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화면을 뚫어질 듯 바라보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묵묵히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바깥에 나가선 안 되는 마리의 일상은 심할 정도로 단조롭게 흘러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화나 소설을 읽거나, 홍차를 마시며 창문밖으로 구경하거나. 나마저 답답해지는 하루하루이다. 누구 하나 얘기할 사람도 찾아오는 이도 없다. 단, 그녀를 제외하곤.

창밖을 구경하던 마리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이내 마리의 시선 안에는 익숙한 갈색머리가 비친다. 오랜만이구나, 사사야키.

“할머니!”

“마리! 위험하니까 머리 집어넣어! 부딪히겠어!”

마리와 같이 그녀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어린아이를 걱정하는 어른의 특징도 빼먹지 않는다. 그녀는 나와 함께 하던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자신감 있고, 안정되 보인다.

사사야키는 시온이 이 세계에 온 그 날부터 가끔씩 마리의 상태를 확인하러 미로 같은 숲 속을 해쳐 이 집을 방문한다. 오늘도 사사야키는 마리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본 후, 사는 데에 불편함은 없는지 꼼꼼히 시설을 정비한다. 그리고 익숙하게 잠깐의 시간을 마리와 함께 보낸다.

“짠! 이번에 가져온 책이야.”

“우와, 고마워 할머니! 저번에 부탁했던 책도 있는 거야?”

“응. 아마 이쯤에 뒀을 텐데… 여기 있다.”

부탁했던 책을 받아 든 마리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 끝이 흔들린다. 사사야키는 뿌듯한 얼굴로 마리를 다정하게 바라본다.

텔레비전 속 풍경은 단잠에 빠질 정도로 평화롭고 익숙하다.

하지만 이변은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그 이변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쉽게 판단 내리기 어려웠다. 마리는 자신의 선택으로 바깥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했고 결심을 행동으로 이루었다.

지금부터 하는 모든 얘기는 더웠던 여름날. 마리가 세상을 처음 맞이한 이 시기쯤에 일어났다.

마리가 바깥 세상에 나가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행복한 일상을 보내면서 그녀의 모습은 화면에 자주 나오지 않게 되었다. 가끔씩 얼굴을 비추긴 하지만 아이들을 번거롭게 하기 싫어하는 눈치이다.  마리가 세상밖에 나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온과 나에게 매우 기쁜 일이었지만 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사사야키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 상을 한 카노 슈우야라는 남자와 가끔 작당을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것 또한 그녀의 생활에 아주 일부분. 대게 카노 슈우야와 대화를 할 때에는 그것과 연관된 심각한 내용뿐이었고 다른 내용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 내용들은 별로 입에 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와 그녀의 대화로 추측컨대 그것을 막을 계획을 세우는 게 분명하다. 그것이 아지랑이 데이즈를 빠져나간 뒤로 사사야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엄마. 아주머니는 괜찮은 걸까요?”

차마 괜찮을 거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곳에 있는 그 누구도 나만큼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사사야키.

“차라리 사사야키의 시점으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수많은 텔레비전 중 유일하게 지지직거리는 화면을 대뜸 째려봤다. 보다시피 이상하게도 그녀의 텔레비전만은 먹통이다. 어째서인지 나조차도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채로 그녀의 텔레비전은 지지직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발생시켰다.

부탁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네가 잘 지내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먼지가 잔뜩 쌓인 텔레비전을 약간의 바램을 담아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그런 바램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아주 연약하게 신호를 잡던 텔레비전이 점점 선명하게 그녀의 세상을 이곳에 전한다.

“되, 되었구나!”

“정말… 엄마의 바램이 닿은 걸까? 아주머니랑은 사이가 좋았으니까.”

미묘하게 동그래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온이 텔레비전 곧곧을 살핀다. 역시나 좀 전과 달라진 곳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이질적인 기계음을 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듣기에는 오래된 텔레비전이 움직이는 평범한 기계음에 불과했지만 이러한 공간에서는 평범한 것이 더욱 이질적이었다.

기다렸던 드라마의 첫 방송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솔직히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본다. 우리 둘은 숨을 쉬는 것마저 잊은 사람처럼 대화를 멈췄다.

사사야키는 어딘가로 향하는 도중이었다. 아이들의 아지트에 방문한 후 그녀는 항상 어딘가로 갈 시간이라며 자리를 떠났는데 지금 가고 있는 곳이 바로 그 장소인 듯했다. 아지트에서 약간 떨어진 곳을 쉬지 않고 걸어간 그녀의 시선에 보이는 건 붉은 지붕을 한, 어딘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집이었다. 붉은 색의 따뜻함이 집 전체를 감싸고 있어 이러한 감상을 느끼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는 어디이지? 시온과 나는 드라마의 앞일을 예측하듯 약간의 추측을 해보았지만 이거다! 하는 답은 없었다. 그러다 번뜩, 아야노에게 들은 자신의 집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떠올렸다.

“혹시 아야노의 집인가? 확실히 그 아이와 친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만…”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그 아이의 동생들은 전부 아지트에 있고, 누구를 만나러 간 걸까?”

실례합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주택의 내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사사야키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현관에서 거실로 꺼림없이 걸어갔다. 현관과 거실 사이에는 나무로 된 문이 있었고, 그 문이 슬며시 열리자 보이는 건 익숙한 복장과 익숙한 얼굴이다.

…설마!

“안녕하세요, 코노하씨.”

사사야키는 ‘코노하’라고 불리게 된 하나의 인격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에게 인사를 하는 사사야키의 얼굴은 어둡고 복잡한 얘기를 할 때의 딱딱한 표정과는 다르게 풀어졌다. 그 얼굴은 편안하고 따뜻한, 마리를 볼 때와 같았다.

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르다. 오래된 친구로서의 감이었다. 둘 다 친근함과 애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얼굴이었지만, 그것의 분류가 확연히 달랐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상당히 익숙한 듯 약간의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든다.

“저건, 분명 ‘코노하’라고 이름 붙여진 그 아이이지 않은가! 설마 사사야키와 아는 사이일 줄이야..”

“응. 확실히 의외의 상대네..”

그녀와 그가 아는 사이인 것은 예상도 못한 의외의 일이었다. 그건 시온도 마찬가지였다. 사사야키가 곁에 있다면 어쩌다가 만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럴 수는 없었지만,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 둘은 사사야키가 가져온 음식들로 짧게 식사를 마쳤다. 코노하는, 매번 식사 때마다 그러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지 못하나 상당히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 치웠다. 사람이 저렇게 먹는 게 가능한가 의문이 드는 양이었다. 시온이 그가 음식을 먹는 양에 놀라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런 그를 보는 사사야키는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줘서인지 뿌듯한 얼굴을 하였다.

사사야키의 음식은 맛있지. 예전에 그녀가 갑자기 벚꽃을 보러 가자며 얘기도 없이 도시락을 싸왔던 기억이 난다. 때는 한참 벚꽃이 활짝 핀 봄이었고, 햇볕이 따사로워 방심하면 잠에 빠질 것 같은 날씨였다. 츠키히코와 그녀가 내 손을 끌고 억지로 벚꽃구경에 참가시켰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에 그들의 손에 얌전히 이끌려갔다. …그리운 추억이다.

식사를 마친 둘은 뭔가 담긴 네모난 상자를 꺼내 그 안에 든 것들을 바닥에 몽땅 쏟았다. 반질거리는 재질로 된 종이 뭉텅이들은 바로 사진이었다. 얼핏 본 사진들은 그녀나 그가 찍혔거나, 둘이 함께 찍은 것들이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그럼 정리를 시작하죠! 오늘은 사진첩도 제대로 사왔으니까요.”

“열심히 할게요!”

“이 사진들을 전부 붙이기는 어려워서, 아쉽지만 몇 개로 간추려야 할 것 같은데.. 우선 사진첩에 넣을 것들을 골라볼까요?”

이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사진을 정리했다. 여러 색이 섞여 본래의 모습을 찾기 힘든 사진들 안에서도 그들의 추억과 기억에 의존해가며 가장 밝게 빛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을 찾아갔다. 그들이 정리하는 사진의 양만큼 함께한 시간 또한 길었고, 사진 속 사계절은 서로가 있음에 더욱 밝게 빛났다.

사진 속 오래된 친구의 얼굴은 조금은 당황스럽다가도, 환하게 웃고 있다가도, 조금은 지쳐보이다가도, 결국은 항상 즐거움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얼굴. 어딘가 무너져 내릴듯 불안한 얼굴과는 다르게 불안함이라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사야키는 항상 다정함과 밝음을 유지하려고 했다. 항상 옅게 짓고 있는 미소 또한 그랬다. 그러한 모습이 진실되지 않다고, 거짓이라고 의심하지 않지만 분명 그 속에는 감춰진 불안함이 있었다. 자신의 과거 얘기를 할 때, 깊은 수면을 보면 감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듯이 그녀의 불안감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 그녀가 말하지 않은, 혹은 말하지 못한 것들에 그 열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불안감은 정신적으로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을 때 그나마 안정되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을 듣고 있으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구나 하나쯤은 약한 곳이 있는 법이다. 그 약한 곳이 사사야키에게는 불안감이었고.

그러니까…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녀의 눈에 비치는 수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어딘가 안심했다.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그리움과 즐거움이 섞인 눈으로 보았을 때.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아마 저 아이가 있다면… 그녀가 자신의 어두운 감정에 휩쓸려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

“으음…”

코노하가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민하는 것을 보던 사사야키는 못고르겠어?라고 말을 던지며 일어서지 않은 채 무릎과 양손을 이용하여 그의 곁에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사진을 고르는데 집중을 한 와중에도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린 두 장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크게 다른 곳이 없는 사진을 두고 고민하던 코노하의 주위에는 비슷한 공간과 포즈의 사진들이 분류되어 뭉쳐 있다.

“전에 축제에 갔을 때네. 불꽃놀이 정말 예뻤는데. 축제 가서 음식을 종류별로 다 먹었잖아. 타코야키랑 빙수랑 오꼬노미야키에 링고아메, 볶음우동, 솜사탕, 초코바나나, 덮밥, 라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저렇게 먹고도 더 먹었단 말이냐!! 저 아이의 위장은 도대체…! 그리고 사사야키 너는 그걸 전부 같이 먹은 것이냐!? 축제 갔다든지, 불꽃놀이를 봤다는 말은 귓속에 머무르지 않은 채 그대로 흘러갔다. 화면 속 코노하를 보며 경악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사야키는 뭘 먹었더라,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 날에 먹었던 음식들을 되새겼다.

“응, 전부 맛있었어!”

그는 먹었던 음식들의 맛을 되살리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상상속의 그는 이미 그 많은 음식들을 다시 먹고 있는 듯하다. 사사야키는 은은하게 타오르며 따뜻함을 전해주는 화롯불과 같이 다정한 눈동자로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코노하가 선택하지 못한 사진을 살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고개를 따라 어깨를 넘어 앞편으로 흘러내렸다. 원래 훨씬 긴 길이의 머리카락이었지만 편의상 저 길이를 유지한다고 들었었다.

어떤 것을 사진첩에 붙여야 할지 고민되는 건 그녀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한참을 망설였다. 사사야키는 두 사진을 번갈아서 살피다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고르기 힘들다. 그치?”

사진을 보던 그녀의 입꼬리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올라갔다. 나는 그녀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갔다. 아마 이 순간이 즐겁다고, 누군가와 추억을 쌓고 나누는 것이 오랜만이라, 그리 여기고 있겠지. 마치 나와 츠키히코가 그랬던 것처럼…?

잠깐, 잠깐만! 머릿속에서 붉은 색 경고등이 삐용거리며 울리고 온통 시끄럽고 복잡한 말들로 가득했다. 설마 사사야키는 저 아이를 좋아하는 계냐? 그것도 연인적인 감정으로써? 단순히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저 아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온갖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코노하와 함께 사진을 보며 추억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둘 다 즐거운 얼굴이다, 그리고… 행복해 보인다. 그 풍경이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아서 가슴속에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왜 하필 저 아이여만 했는지 걱정서린 의문도 들었다. 사사야키는 분명 저 아이를… 헤치게 될 거라 여길 터인데. 사사야키가 저 아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스스로가 그를 죽이겠다고 말했을 때 과연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곁을 내어준 사람이 자신의 손에 죽어가는 것이 나도 모르게 상상되는 순간에는 또 어땠을까. 모든 상상과 후회의 집합체인 죄악이 그녀를 짓누르게 되면, 누가 그녀를 구원하나?

그녀의 계획과 이 감정의 결말에 대해 생각하자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한 동안 안타까운 표정으로 있자, 시온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설마… 하고 작게 혼잣말을 했다.

“시온. 너의 생각도 역시…”

“응. 엄마랑 같은 생각이야.”

지금처럼 텔레비전 속 등장인물들이 모르는 일을 알게 되더라도 우리는 전해줄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침울한 얼굴을 한 나와 시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지 이 이야기의 결말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 우리는 합이라도 맞춘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일렁거리며 움직이는 화면에 집중했다.

웃고 있던 사사야키는 현실을 자각한듯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코노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들고 있던 사진을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 하나도 정리하지 못했어. 정리하려고 해도 잘 안 돼서, 미안해.”

처음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양의 산더미 같은 사진들을 눈으로 가리켰다. 사사야키가 그의 시선을 따라 사진 무더기에 도달했고, 그가 풀이 죽은 듯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 짧은 틈에 사사야키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안쓰럽게도 평소와 전혀 다름없이 웃는 얼굴이다.

“괜찮아. 나도 고민하는데 시간을 한참이나 써버려서 거의 그대로인 걸.”

그 둘은 눈대중으로 서로가 정리하고 있던 사진들의 양을 비교했다. 사사야키 쪽의 사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얼추 비슷했다. 몇 개의 사진을 제외하곤 처음과 동일한 상태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정리할 때 뭐든 망설임 없이 처리하는 편이었다. …이런 간단한 일에 망설였다는 것을 어떻게 여기면 좋을지.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만큼 추억들을 소중하게 여겨준 거잖아. 음…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나?”

사사야키가 잠시 망설이며 뜸을 들이더니 농담이 섞인 말로 괜찮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 사사야키는 나쁘지 않아.”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 세상의 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한없이 투명한 눈망울로 태연하게 당연한 사실을 말했다. 간결한 한마디에 커진 동공과 깜빡이는 것을 잊어버린 눈꺼풀. 사진을 정리하다 말고 멈춰버린 양손. 사사야키는 순간 자신의 속마음을 그가 들을 수 있다고 착각할 만큼 동요했다. 장난으로 꺼낸 질문에 되돌려준 담백하고 진솔한 대답이 그녀의 마음에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사진을 정리하던 그녀는 금새 밝은 얼굴로 돌아와 이곳을 기억하는지 물으며 사진을 내밀었다. 지평선 넘어 태양이 올라와 세상에 온기를 전하듯 그녀의 미소가 주변을 따뜻하게 감쌌다. 저 미소가 진실되었는지 그녀 스스로만이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이 순간의 미소만큼은 진실되다고 느껴졌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따뜻한 미소를 따라 코노하도 즐거운 듯 웃음 짓는다. 그리고 또 다시 좀 전과 같은 짧고 진솔한 문장을 그가 그녀에게 선물한다. 자신이 선물하는 것이 치명적인 독인지 달콤한 케이크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듣자 마자 나는 그의 말이 독을 숨겨둔 케이크 같은 것이라 깨달았다. 애정은 그녀에게 죄악감을 자라나게 하니, 저 말은 달콤한 케이크이자 치명적인 독이다.

어떠한 치장도 포장도 없는 날 것에 가까운 진심에, 차마 ‘그럴 거야’라 말하지 못한 그녀의 머리가 대책을 세우려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인 머리는 진심을 전하자, 하지만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거라는 냉정한 결론을 냈다. 입은 그 결론을 잘 포장하여 소리로 만들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응, 분명 그럴 거야.”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그는 한치 앞을 모르는 미래에 대해 확신했다. 나의 곁에 네가 있을 거다. 그리고 너의 곁에는 내가 있을 거라고.

아아, 그런 것이구나. 이제야 나는 그 둘의 관계에 대해 확실히 정의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환상이 꿈인 이 두사람은 아무리 안개가 시야를 흐리게 해도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관계라고, 그 꿈의 중심에는 서로가 있겠지. 어두컴컴한 조명 하나 없는 길에서도 서로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그런 관계인 것이라고.

텔레비전은 정해진 시간이 되었다며 처음부터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던 것처럼 회색 빛으로 변해갔다. 회색 빛에 따라 그와 어울리는 노이즈가 발산됐다. 아주 서서히, 서서히 흐려져서, 결국 그 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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