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 히트맨 리본(히바리 쿄야X사쿠라 아야)
By. 킹타
“나미모리 중학교 3-B 교실에는 늘 빈자리가 있다. 어영부영 전학을 와서 모든 것에 서투르던 한 달이 흐르고, 차차 적응하는 와중에 나는 먼지가 부옇게 앉은 빈자리를 찾아냈다. 빈자리는 일상 속에 묻혀 죽어 버린 것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그래선지 자연스레 주인이 없는 자리라고만 생각했다. HR 시간 담임선생님이 출석 번호를 건너뛰어 부르는 것을 알아채기 전까지 주인이 없는 자리라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담임선생님은 시덥잖은 이유로 내게 반장 자리를 주셨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출석부를 힐끔힐끔 들여다보는 게 수상스러워 보이지 않을 구실이 생겼을 뿐이다. 출석부를 펼친다. 중학교 증명 사진과 이름 따위가 적힌 출석부에서 나는 얼굴 없는 유령을 발견했다. 유령의 이름은 ‘류구 아야’ 였다.
‘류구 아야’ 는 누구일까? 담임선생님이 출석 번호를 건너뛰어도, 명확하게 빈자리가 있음에도 나 말고는 누구도 ‘류구 아야’ 를 인식하지 못했다.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교실에서 ‘류구 아야’ 의 존재는 내 머릿속 상상과 출석부에 적힌 이름 한 줄이 다였다. 수십 명과 함께 있는 교실 한가운데서 돌연 고립감이 들이쳤다. 그렇기에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에게 ‘류구 아야’ 가 누구인지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선이 그어진 것처럼 그냥 그러고 싶었다.
유령의 이름을 알아낸 지 나흘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류구 아야’ 에게 얼굴을 붙여 주었다. 그 여자아이는 검은 머리였고, 붉은 눈동자에……. 어두운 인상이었다. 어, 어째서 존재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어릴 적 상상 친구와 달리 여자아이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더 크게 읽어.”
“아, 네. 어릴 적 상상 친구와 달리 여자아이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시끄러워. 작게.”
“어릴 적 상상 친구와 달리 여자아이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 작아. 안 들리잖아.”
어쩌라는 거야!
“너희.”
묵묵히 서류를 정리하던 풍기위원장이 일갈했다. 장시간 무릎을 꿇고 있어 다리에 쥐가 났었는데, 풍기위원장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는 쥐도 달아나 버렸다. 그런데 목숨까지 달아나게 생겼다.
“그 시덥잖은 놀이 언제까지 할 거야?”
“왜? 재밌는데.”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나는 고쿠요 중학교에서 3학년으로 진급하고 한 달 만에 나미모리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미 저마다 무리가 형성된 학급에서 친구를 사귀기란 아는 얼굴도 없고, 숫기도 없는 내겐 하늘의 별 따기. 남은 1년이 막막하던 시기에 발견한 게 ‘먼지가 부옇게 앉은’, ‘일상 속에 묻혀 죽어 버린 것처럼 존재감이 없는’ 빈자리였다. 빈자리는 사춘기 소년의 상상력을 조금 불어 넣었더니 금세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머릿속엔 이미 소설 한 편이 완성돼 있었다. 주인공은 나와 얼굴 없는 유령 ‘류구 아야’ 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Another’ 란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었는데…….
누가 알았겠는가. ‘류구 아야’ 는 유령이 아니었다. 매점에서 대충 끼니를 떼우고,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복도가 시끌시끌해졌다. 건너편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진인가? 그 때 용감한 한 학생이 우리 반 앞문을 벌컥 열더니, “히바리 선배랑 사쿠라 선배가 싸운다!” 고 외쳤다. 비상 사태였다. 지진은 아니었지만, 반에 있던 모두가 지진이 난 것처럼 일동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히바리 선배와 사쿠라 선배는 소식에 어두운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히바리 선배는 나미모리 중학교 풍기위원회 위원장으로, 교칙을 어기는 학생을 처단한다는 명목 하에 폭력을 일삼는 무뢰한이다. 말이 좋아 풍기위원회이지 조직폭력배나 다름없다. 듣자하니 마을축제에서 자릿세도 걷는다고 한다. 사쿠라 선배는 그런 히바리 선배의 여자친구인데, 청순하니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맨손으로 트럭을 집어던지는 걸 목격했다는 소문이 자자한 살 떨리는 사람이었다. 트럭이 사람을 칠 수는 있어도 사람이 트럭을 치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 가능하더라. 어떻게 알았냐면,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소음이 점차 줄어들자, 쥐 죽은 듯이 있던 반 친구들이 책상 밑에서 하나둘씩 속닥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닌 척 귀를 기울였다.
“여기로 오진 않겠지?”
“운동장으로 나가실걸. 학교 무너지는 거 싫어하잖아.”
“무서워 죽겠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지. 사쿠라 선배 말이야. 네 옆자리 아니었나?”
“헐, 맞아.”
“그치. 교실에 안 들어오시는 게 어디야.”
옆자리?
“기억나? 학기 초에 우리 반 모치다 군이 사쿠라 선배 본명으로 불렀다가 다음 날 출석부에서 사라진 거.”
“본명이 뭐더라? 류, 류…….”
설마!
“류구 아야.”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사쿠라 선배가 류구 아야였다니. 사쿠라 선배가 ‘류구 아야’ 였다니!
그러고 보니 사쿠라 선배는 모종의 이유로 모계 성씨를 사용 중이랬었다. 이럴 수가. ‘류구 아야’ 에게 환상을 품고 있던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애초에 우리 반이면 동갑 아니냐고. 사쿠라 선배라매. 사쿠라 ‘선배’ 라매! 앞뒤가 안 맞잖아! 헷갈리게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렇게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혼미스럽던 일주일이 흘렀다. ‘류구 아야’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한 줄 한 줄 써낸 회심작을 -류구 아야를 주제로 한 나의 미스터리 소설. 맨 처음에 낭독했던 부분 말이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고뇌하던 나는 이내 마음을 정리했다. 사쿠라 선배의 손에서 종이비행기처럼 날아가던 트럭이 떠올라 버린 것이다. 그래, 버리자! 태우자! 없애는 거야. 설마 사쿠라 선배가 ‘류구 아야’ 였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없던 일로 하자! 회심작이든 뭐든 간에 목숨이 최우선이지. 태운다!
결심한 순간, 어디선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해?”
내 손에는 아직 나의 회심작이 들려 있었다. 눈물을 삼키며 나의 회심작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도중에, 운명의 장난처럼 한손으로 ‘무언가’ 를 질질 끌고 오던 사쿠라 선배와 대면한 것이다. ‘무언가’ 가 무엇인지는 정신 건강을 위해 애써 외면하기로 했다. 선배는 공책 사이로 ‘류구 아야’ 라는 글자를 발견했는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따라오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어딘가로 향했다. 따라가도, 따라가지 않아도 죽음뿐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사쿠라 선배의 목적지는 응접실이었다. 응접실이라니! 풍기위원장 출몰 구역이잖아! 제발 없기를. 제발 안 계시기를!
“뭐야, 그건.”
하느님은 날 버렸다. 사쿠라 선배는 스스로 읽기 귀찮다며 어디 한 번 읽어 보라는 듯이 턱짓을 했다. 그렇게 나는 응접실 한가운데서, 히바리 선배와 사쿠라 선배를 앞에 두고 회심작을 낭독하게 된 것이다. 무릎을 꿇은 채.
“이제 없습니다. 이게 끝이에요.”
“그럼 다시 읽어.”
죽여 줘!
“그 시덥잖은 놀이 언제까지 할 거야?”
“왜? 재밌는데.”
“지루하고 불쾌해. 마침 일도 끝났으니……. 물어죽인다.”
살려 줘!
“히바리 군, 서류 정리 다 했어?”
“남은 건 내일 할 거야. 그보다 저걸 치워야겠어.”
저거? 나 말하는 거지?
“내가 가져왔는데.”
가져와? 그것도 나 말하는 거지?
한순간에 사람에서 사물로 강등당했다.
“너. 류구라는 성씨, 싫어하지 않았나?”
쾅, 하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세상과의 작별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인 줄 알았는데, 잘 보니 사쿠라 선배의 발밑에 크레이터가 생겨 있었다. 일순 종이비행기처럼 날아가던 트럭이 또다시 눈앞에 아른거렸다. 으스러진 바닥, 공중을 가르던 트럭의 자리에 나 자신을 대입하는 건 정말이지 간단했다.
“싫어해.”
“그럼 왜 평소대로 하지 않고?”
“재밌잖아. 미스터리 소설 같아서.”
“그래서 얌전히 보내 주겠다.”
히바리 선배와 사쿠라 선배의 시선이 맞닿았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달콤한 무언가가 아니라, 전쟁의 선포를 알리는 둘만의 시그널 같았다. 사쿠라 선배는 한 걸음씩 히바리 선배에게 다가갔다.
“히바리 군, 화났어?”
“아니……. 화나지 않았어. 류구.”
사쿠라 선배가 책상을 걷어찼다. 난데없는 낭독회 와중에도 차분하게 정리하던 서류가 이리저리 흐트러졌는데, 오히려 히바리 선배는 기쁜 것처럼 슬며시 웃었다.
“좋네. 할까?”
뭐를?
“해.”
뭐를!
히바리 선배가 품에서 톤파를 꺼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꼭 들떠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방해물은 꺼져.”
착각이었다. 저건 악마다.
알아서 꺼질 수 있는데, 히바리 선배는 나를 걷어차는 걸로 응접실에서 꺼지게 했다. 의식이 꺼져 간다…….
욱신욱신한 통증을 동반하며 다시금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내 시신경을 의심했다. 말끔하던 응접실은 온데간데없고 폐허만이 존재했다. 무너진 벽 틈으로 주홍빛 저녁노을이 새어 들어와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이 돌덩이 같아서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움직이길 포기하고 그 지옥에서 생존한 걸 자축하기로 했다. 전치 몇 주는 나오겠지만, 살아남았다!
어디선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시감이 들게 하는 목소리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목소리에 애정이나 투정처럼 조금 더 귀여운 감정이 묻어 있다는 것.
“히바리 군이 잘못했어. 서류만 보고.”
“그래서, 내가 안 놀아 줘서 그 시덥잖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단 거지.”
“심심하다고 했는데. 서류만 보고.”
“투정 부리는 거야?”
“아니.”
엎어진 채로 눈만 도르륵 굴려 찢어진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실눈이라 확실치 않지만,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사쿠라 선배와 달리 히바리 선배는 멀리서 봐도 너덜너덜했다. 승패가 갈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명확하게. 나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나미모리의 서열을 정리했다.
그렇게 엎어진 채로 이어진 잡담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얼떨떨했다. 폐허와 폐허를 만들어 놓은 주범들이 한 컷에 모여 저러고 있다. 저러고 있다 함은, 달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단 뜻이다. 위화감이 들 법도 한데 두 사람이 무척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 같이 여상해서 내게도 그냥 평범한 연인들처럼 보였다. 죽어라 싸우길래 앙숙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서로 좋아하긴 하는구나. 나는 이대로 죽은 척을 유지하다가 두 사람이 떠나면 엉기적엉기적 기어 나와서 구조 요청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둘만의 세계에서 알콩달콩 놀고들 있으니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거다. 여기서 살아 나가면, 쥐죽은듯이 전학을 가자. 험난했던 나의 이야기는 마침내 무사히 막을 내렸다.
“저건?”
“아, 참.”
어?
“이야기 끝나면 죽이려고 했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