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티드 원더랜드(아줄 아솅그롯×아이렌)
By. Esoruen
아이렌 씨의 본질을 보는 능력은, 아마도 천성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스스로 알려 한 적도 없지만 자연스럽게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자 재앙 말입니다. 영혼 그 너머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자수정 색 눈동자에 깃든,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마법….
그렇기에 저는. 아이렌 씨는 본디 그리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돌아가게 되더라도 결국은 아줄의 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배는 대체 왜 그렇게 사람을 깔보는 거예요? 꼭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사람처럼. 자기가 잘난 걸 일일이 확인받지 못하면 제 가치가 없어진데요?”
아아. 언젠가 그 사람이 리들 씨에게 그렇게 불평하는 걸 들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당사자가 아는 날이 올까요. 그때의 아이렌 씨를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나오고 맙니다. 겨우 몇 번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눈 것뿐일 텐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짚어낸 건지. 치어이던 시절부터 아줄을 알아온 저나 플로이드라면 몰라도. 아이렌 씨는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온 지 1년도 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그리도 간단하게. 마법도 못 쓰면서 간단하게 타인의 그림자 속을 바라보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리 생각했었지만… 결국 제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기억 된 것은, 통찰당한 쪽의 반응이었지요.
“그 여자. 다 안다는 듯 말하는 것이 기분 나쁩니다.”
아이렌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온 날이면 아줄은 언제나 화를 삭이려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리 투덜거렸습니다. 저는 그럴 때 마다 ‘아이렌 씨라면 아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알아본 쪽일 것이다’라고 직언하려다가, 괜히 화만 더 키울까봐 입을 다물곤 했죠. 이미 플로이드가 ‘그렇게 기분 나쁜 녀석인지는 모르겠는데.’ 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저리 인상을 구기는데, 굳이 저까지 불난 집에 부채질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아줄이 스스로 깨달을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여자는 단순히 기분 나쁜 인간이 아니라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쉽게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내면과 똑같은 색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 막을 틈도 없이 그 안에 녹아들 존재임을.
그리고 그 자각의 순간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치명적인 방법으로 아줄에게 찾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과거의 흔적을 소거할 기회와 가게 확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한심한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모아온 타인의 능력들. 그 모든 것이 아이렌 씨와 사바나클로의 협공으로 무너진 그 날. 아줄은 드디어, 아이렌 씨의 통찰이 그럴듯한 오만이 아닌 진실임을 눈치 채게 되었습니다.
“괜찮아. 속상했구나, 아줄. 착하지? 많이 불안했지?”
그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순식간에 어린아이의 얼굴로 돌아간 아줄을…, 제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정말이지,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토록 아쉬워하는 건, 비단 아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말이죠.
‘그렇게나 질색했으면서.’
제대로 설명된 것도 없는 과거의 편린. 그야말로 커다란 빙산의 수면 위 부분만 본 것뿐인데, 아이렌 씨의 경멸은 순식간에 연민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아니, 과연 그것은 연민이었을까요? 그 다정한 눈길은, 단순히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것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달고 기꺼웠습니다.
“‘제대로 된 나’ 같은 건 없어. 자신을 사랑하니까, 남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채워 넣고 싶었던 거잖아. 그건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나쁜 거야, 이대로도,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아이렌 씨가 겁도 없이 상대를 덥석 끌어안고 속삭이던 말들은, 아줄이 그토록 갈망했던 근본적인 애정이 덕지덕지 엉겨붙어있었습니다.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근본적인 갈망을 채워주는 위로들….
저는 그 말 하나하나가 아줄을 해체해 나가는 걸 보면서, 조금 전율하고 말았습니다.
오버블롯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대의 곪아 터진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 사람은 정말로 무언가의 신처럼 보였거든요. 신자의 고통을 마치 제 업보인 것 마냥 슬피 달래는, 일방적이고도 절대적인 신….
그리고 저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아이렌 씨의 정말로 무서운 점은 단순히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면해보지도 못한 모든 것을 제 일인 것 마냥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감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가벼운 이해 수준에서 그친다면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고 끝나겠지만, 제 자신이 없는 것 마냥 완벽하게 타인의 것들을 흡수해 이해하는 수준까지 가면 그건 살아있는 흉기가 되고 마니까요. 만약 제게 ‘어디를 만지면 아픈지, 어디를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는 상대’가 생긴다면? 그건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무섭잖습니까.
“…아이렌 씨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아줄은 아이렌 씨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더 이상 ‘기분 나쁘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분명 그 훤히 들여다보는 눈이 싫어도 그걸 단순한 불쾌감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던 거겠죠. 신자가 어찌 신의 전능함에 불쾌함을 표하겠습니까. 아줄이 느끼는 감정은, 말하자면 경외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면 언제나 단정한 웃는 얼굴을 잃어버리는 아줄을, 몇 번이나 봤기에.
‘아줄도 불쌍하게 되었군요.’
아줄은 천성이 상인이었습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제 값을 주고 거래를 하거나 부당한 계약으로 뺏어오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었죠. 그런 아줄이, 타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원하는 것도 없기에 쉽게 모든 것을 내주는… 공허한 심해 속 해구 같은 눈을 한 상대를 어찌 상대하습니까. 옛날부터 쭉 아이렌 씨에 대해 말할 때, ‘원하는 게 뭔지 몰라 약점도 못 잡겠다.’ 고 했으면서.
‘뭐, 적응하겠지요.’
저와 플로이드 보다 늦었을 뿐, 아줄도 결국 아이렌 씨의 방식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말 겁니다. 이미 저항할 길도 없으니,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반드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