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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리본X이데)

By. IDEALE

 

 

우리 보스는 참 좋은 사람이지만 종종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서 탈이야. 성공은 고사하고 목숨이라도 부지하면 다행인 수준의 억지 말이다. 아쉬워. 그것만 아니면 최고의 리더감인데. 역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게지...

 

패밀리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적, 낯선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아둥바둥하던 나를 몰래 부른 선배가 술을 한 잔 건내며 털어놓은 말이었다. 통치자의 비밀스러운 결함은 꽤나 씹기 좋은 안줏거리이나 그때든 지금이든 패밀리 내 보스의 평판이 무척 좋은 편에 속한다는 점과, 말단이었던 나와 그가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오늘따라 많은 업무에 시달린 직장인의 단순한 불평 정도로 치부되었다. 적응마저 힘들어하던 나에게는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기도 해, 진심을 다해 공감해 줄 수 없었다. 그렇군요.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자신이 듣기에도 건조하게 튀어나온 위로에 선배는 미간을 좁혔다. 두고봐. 내 말에 공감하는 날이 올 거야. 네. ...퍽이나요. 나는 뒷말을 삼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선배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을까요, 보스.

 

패밀리의 간부가 되고 여섯 번째로 받은 임무는 '리본'이라는 남자를 패밀리로 영입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누군지는 특별히 조사를 하지 않아도 알았다. 뒷세계에 좀 있었다는 사람이라면 그를 모르기 힘들었다. 그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 마피아의 간부, 세계 최고의 히트맨, 최강의 아기 (구) 아르꼬발레노까지. 최고란 최고는 전부 담당하는 남자였다. 조직원이 겨우 백오십 명을 넘어가는 소규모 패밀리의 간부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수식어를 가진 남자가 아닌가. 나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나는 가능성이 없는 일에 뛰어들 만큼 호기로운 불나방이 아니었고, 이 임무의 성공 가능성은 아주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러한 판단이 서자마자 단박에 손을 들어 거부를 표하려던 나를 일별한 보스는 말없이 타겟의 프로필을 내밀었다. 나의 의사 따위는 중요치도 않다는 듯 완강한 태도였다. ...아, 그래. 그는 이 조직을 거느리는 자였다. 그는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명령을 내린 것이지, 휘하의 의견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나는 더이상 반박하길 포기하고, 그의 앞에 굴종했다.

 

"...네, 보스."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집무실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

 

 

인맥의 인맥까지 사용해 겨우 잠입한 본고레 패밀리는 그야말로 최고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곳이었다. 훈련의 강도, 임무의 가혹도, 조직의 규모.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소규모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나에게 무척이나 벅찬 것이었다. 첫날부터 세 달까지는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더라. 눈을 뜨자마자 훈련을 하고 자잘한 임무에 나갔다 돌아와 침대에 뻗는 것. 말단에게 허락된 일상은 이게 전부였다. 타겟이라는 남자와는 층이 달라 마주칠 일조차 없었다. 일의 주도권이 바뀌지 않았나? 모르겠다. 깊게 생각하기에는 하루가 너무 고됐다.

 

본고레에 잡입한 지 세 달이 넘어가고 내가 정말 본고레의 말단 조직원으로 취직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쯤에 타겟을 처음 보았다.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말끔하게 잘생긴 얼굴과 둥근 구레나룻. 그리고 중절모. 두말할 것도 없이 내가 찾던 '리본'인 그는 세 달을 읽어 달달 외운 프로필 속 내용과 달리 연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데, 검은 머리칼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본고레의 또다른 간부였다. 이 사실을 다른 조직원에게서 막 들었던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나의 타겟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자리를 꿰찬 남자였다. 그런 남자보다는 그의 연인을 꼬여내는 쪽이 쉬울 거라는 건 열 살짜리 아이도 낼 수 있는 답이었으니.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대로 되지 않는 법이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커다란 착각을 했음을 인정했다.

 

며칠간 관찰한 여자는 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관되게 다정하고 친절한 태도로 나를 대하긴 했지만, 그것은 오로지 '부하'인 나에게 베푸는 다정이었다. 조금만 그 선을 넘어가도 흥미를 잃은 얼굴을 했다. 말단 조직원인 내가 패밀리의 간부인 여자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순간은 기껏해야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다였기에 그 시간을 십분 활용하려 했으나, 필요한 말이 끝나면 사라지는 여자와는 그조차도 무리였다.

다가가기 힘든 것은 남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자보다 훨씬 차가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 중절모를 눌러쓰고 그보다 검은 분위기를 풍기며 복도를 지나가는 그에게 말을 걸 만큼 용기있는 조직원은 없었다. 나 역시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를 지켜본 지 열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와 가까워지길 포기했다.

 

결국 나는 그들을 한꺼번에 회유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바꿔야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리본, 그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연인인 여자도 손에 꼽는 히트맨이다. 둘 모두를 데려간다고 해서 보스가 나를 싫어하거나 내치는 일은 없을 테지. 나는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다음번 그들이 함께하는 날, 출근부터 식사, 퇴근마저 떨어지지 않고 붙어 보내는 날. 나는 그날 그들의 하루를 통째로 감시하기로 했다. 그것은 흔치 않았지만, 또 아주 없는 일도 아니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그날을 위해 나는 매일같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 본고레성의 투명한 창문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그로부터 일주일은 족히 지난 시점이었다. 새벽닭이 울기 전부터 창가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나는 고풍스러운 검은색 차에서 내리는 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유레카. 아직도 졸린 낯을 한 여자가 남자의 팔에 기대고, 남자는 그런 그녀를 단단히 붙잡고서 성 안으로 들어섰다. 무겁거나 귀찮다는 내색 없이 그녀를 받치고 계단을 오른 그는 사무실의 문마저 자신이 열고 들어갔다. 안 돼, 가지 마. 기린마냥 목을 빼고 허둥거리는 나를 비웃듯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그 뒤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영역이라는 것 같았다. 제기랄. 십 분이나 지났나. 기다림에 비해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입이 썼다.

 

내가 그들과 다시 만난 것은 해가 높이 떠오른 시각, 본고레 성 내의 식당에서였다. 본래 간부들은 저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날은 무언가 뒤틀렸는지 그들은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지. 나는 맛잇는 냄새를 풍기는 스크램블 에그 조금과 버터 감자 몇 알, 봉골레 파스타까지 전부 그릇에 담은 후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찌나 열심히 그들을 훔쳐보았는지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눈치를 주기 전까진 파스타 조각이 뺨에 붙은 줄도 몰랐다. 안다고 해서 뭐 어쩌겠냐만. 제 참견에 반응도 없이 앞을 주시하는 나를 가리키며 킬킬대던 남자는 이내 목소리를 낮추어 중얼거렸다. 그렇게 해서 뚫어지겠냐. 너, 이데 님께 관심이라도 있어? 있다면 접는 게 좋을 거다. 저번에 그녀에게 고백하겠다며 러브 레터를 준비한 녀석이 하나 있는데, 요즘은 보이질 않아. 그뿐이냐. 방도 비워졌지. 쉬쉬하는 분위기지만 다들 알아. 누구의 소행인지.

놈은 맞장구 한 번 쳐 주지 않는 나를 두고도 한참을 떠들었다. 누가 누구와 사귀고, 헤어졌고, 쫓겨났다는 등 대부분이 지극히 무의미한 가십거리였다. 그 걸걸한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그들만을 훔쳐보던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여자를 피하려 감자 한 덩이를 급히 욱여넣었다. 켁, 콜록. 무리하게 삼킨 음식물이 목구멍을 막아 기침이 나왔다. 그녀는 그런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무어라 이야기하고는 일어나 나가 버렸다. 그 또한 그녀를 따라 금새 자리를 떴다. 저기, 나 아직 다 안 먹었는데. 나도 가야 되는데. 그들을 쫓기 위해 플레이트에 놓인 달걀 덩어리를 허겁지겁 쑤셔넣자 조금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부룩한 배를 문지르며 식후 산책을 즐기는 그들을 멀찍이서 뒤따랐다. 그들은 별다른 경로를 정하지 않고 성 주변을 걸어다녔다. 손을 단단히 맞잡은 연인은 퍽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으나 지금은 정오였고, 한참 볕이 뜨거운 시간대였다. 그들이 유능한 히트맨이라고는 해도 내리쬐는 열기마저 피하는 재주는 없었다. 그렇기에 갈수록 따가워지는 햇빛을 견디지 못한 여자가 눈을 찡그리자, 남자는 그녀의 얼굴 위로 손차양을 만들어 빛을 가려주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연인에게 드리운 작은 그늘을 거두지는 않은 채로 남자가 여자에게 몸을 숙였다. 그녀의 귓가에 닿도록 몸을 낮춘 그는 무언가를 속삭였고, 그녀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무슨 말을 했길래 저래. 궁금증에 휩싸인 나는 둘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몸을 기울였지만, 그들은 그보다 빨리 방향을 틀었다. 다급한 걸음이었다. 그렇대도 놓칠 수는 없지. 나 역시 잰걸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목적지는 성의 뒤편이었다. 한없이 음지에 가까운 곳. 인적이 드문 그곳에 도착한 직후 여자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아 입을 맞추었다. 입맞춤을 받은 그는 자신보다 한참 작은 그녀가 애정을 표현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기꺼이 허리를 굽혔다.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와 재킷에 구김이 가는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아무리 임무라도 말이야. 저런 꼴까지 봐야 할까. 나는 고민했다. 그들은 이제 반쯤 뒤엉킨 자세로 키스하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서 호흡이 부족한 듯 숨을 헐떡인 여자가 남자를 밀어내며 키스를 끝내려는 듯했지만, 남자가 그런 여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머리를 잠시 쓰다듬고서 다시 입술을 겹칠 뿐이었다. 젠장. 저러다 사람 잡겠군. 반 강제로 타인의 끈적한 애정행각을 지켜보던 나는 머릿속으로 이번 임무의 위로 엑스자를 그렸다. 그들을 떨어뜨릴 수 있는 존재가 적어도 나는 아니라는 걸 방금 확인했다. 사실 내가 아니라도 그랬을 테지. 서로를 끔찍히, 정말 끔찍히도 사랑하는 연인 사이만큼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것은 없으니.

 

그래, 멍청하게도. 임무를 위해 할애한 지난 며칠은 정말이지 의미없는 시간 낭비였던 것이다. 성공을 점치진 않았어도 이런 이유로 말아먹을 줄은 몰랐지. 이것은 엄밀히 말해 나의 탓은 아니었지만, 실패는 실패였다. 나는 올라오는 짜증을 어찌할 줄 모르고 애꿎은 땅에 발을 휘둘렀다. 흙이 파이고 모래가 튀겨 신경질적인 소음을 자아냈다. 아차. 나 몰래 숨어있었지. 곧바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몸을 물렸음에도 이미 늦었는지, 즉시 타인의 존재를 눈치챈 남자가 자신의 그림자로 연인을 덮으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네가 누구든 당장 그 자리를 뜨라고. 날카로운 검은색 눈이 경고하고 있었다.

 

...예, 예. 그렇게 둘만 있기를 원하신다면야 빠져 드립죠. 아직도 달라붙어 혀를 섞는 그들에게는 절대 들리지 않을 비아냥을 지껄이며 뒷걸음질을 친 나는 정장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최신식 스마트폰을 꺼내고, 단축번호 일 번에 저장된 보스의 연락처를 눌렀다. 더이상 이 빌어먹을 조직에서 버틸 수도, 그 남자를 꼬여낼 수도 없으니 그만 이곳을 탈출하겠다고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보스가 조금 이상해도 아둔한 남자는 아니거든. 무리한 명령이라는 것쯤은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을 테니 이번 일은 시말서 몇 장으로 넘어가 주었음 좋겠다.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잡생각을 힘겹게 갈무리한 나는 화면 하단의 전송 버튼을 누른 뒤, 급격한 피로를 느끼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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